여기저기에서 OpenAIChatGPT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 아직 한국어 인식은 좀 떨어지는 것 같지만서도... 질문을 하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거나 기사를 요약한다거나 하는 등 AI의 엄청난 발전에 정말 놀라게 되었다.

AI스피커에서 느꼈던 허술한 대화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ChatGPT의 프롬프트를 이것 저것 입력해 보며 신기해 하다가 갑자기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러한 인공지능을 기대했던게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 아마도 9살~10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 나지 않는다.

부모님께 게임기를 가지고 싶다고 떼를 썼더니, 부모님께서는 당시 전자회사에 다니시던 이모부에게 쓸만한 제품을 문의하셨고 내가 원했던 게임기는 아니었지만 금성 MSX 컴퓨터(8비트)를 사주셨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 사진 찾아보니 모델명은 GFC-1080 또는 GFC-1080A 로 추정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사달라는 물건을 사준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부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금성 GFC-1080 디바이스

출처: https://www.msx.org/wiki/Goldstar_GFC-1080

금성 GFC-1080 부팅화면

출처: https://www.msx.org/wiki/Goldstar_GFC-1080

스샷의 PASOCALC 가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저가형이었던 GFC-1080A 인 것 같다.

슬롯에 팩을 장착하지 않고 전원을 켜면 파란색 화면이 표시되었고, BASIC 이 실행 되었다.

또는 팩을 장착하고 전원을 켜면 게임이 실행되었다. (재믹스 게임팩과 호환이 되었기에 사실상 게임기로 주로 사용하기는 했었다.)

나는 제품과 함께 딸려온 매뉴얼 중에 MSX-BASIC 교재를 호기심에 천천히 넘겨 보았다.

? 4+2-1 
5
OK

이런 비슷한 형태로 물음표 ? 뒤에 수식을 입력하면 계산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컴퓨터 물어보고 싶은게 생기면 ?를 입력하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단계 명령을 입력해주면 한글 모아쓰기 모드 같은 것으로 한글을 입력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것을 알게 된 뒤, 학교 숙제를 하다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고, 나는 얼른 컴퓨터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TV에서 만화를 보면 컴퓨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그리고는 물음표와 함께 문제를 한글로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았다.

? 과수원에서 철수는 사과를 20개 바구니에 담고 영희는 배를 30개 담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남은 것은 몇 개 일까요?

그리고 당당하게 엔터를 입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상했다.

영어를 잘 모르는 나로써는 이해 할 수 없는 아리송한 영어가 표시되었다.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먼저 책이나 사전을 찾아서 스스로 해결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책장에 꽃혀 있던 영어사전을 펼쳐서 해석을 해보니 '구문이 잘못되었다' 같은 느낌이었고, 나는 이를 두고 '문제가 잘못 되었다' 로 해석하고는 '내가 문제를 못푸는게 아니라 문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정신 승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여러가지를 입력해보았는데, 늘 내가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이상한 영어만 계속 나왔다. 아무래도 컴퓨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GW-BASIC을 배우고는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저 물음표 ? 는 PRINT 라는 명령어의 축약형이었고, 그 결과는 바로 Syntax Error 였다. 전혀 문법에 맞지 않는 형태로 작성을 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컴퓨터는 명확하게 요구하거나, 그에 따른 수행하는 절차를 정확한 문법으로 프로그래밍 해주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히 흘러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결국 개발자가 구현한 대로 동작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ChatGPT로 인하여 컴퓨터에게 질문을 하면 제대로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린게 아닌가?

그 옛날 어린 꼬마가 컴퓨터를 만나고 상상했던 모습이 드디어 이제 눈 앞에서 실현되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